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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신앙 (누가19:1-10) [2025년 11월 2일, 성령강림 스물한째주일]
2025-11-04 19:19:50
박신진 목사
조회수   16
설교일 2025-11-02
설교말씀 누가19:1-10.
설교제목 행동하는 신앙

행동하는 신앙

누가19:1-10

2025112[성령강림후 스물한째주일]

 

교회 다니고 외적인 신자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온전한 신앙인인 것은 아니다. 참된 신앙은 참된 예배에로 이어지고, 참된 예배는 틀림없이 참된 생활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참된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자세의 변화와 행동이 따르는가?

우리나라에서 어제까지 APEC정상회담을 했는데, 21개 회원국가의 많은 대통령과 수상들이 모였다. 그 중엔 올해 미국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이재명 대통령, 벌써 3연임을 지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총리와 일본의 새 총리 다카이치도 있다. 이들이 한 나라의 정상이 되기까지는 각 나라와 개인에 따라 과정이 다르겠지만, 변함없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기들의 소신과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믿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믿음으로 바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세와 행동이 필요하다. 믿음에 따르는 바른 태도를 가지고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면 후회하게 되고, 바른 자세를 가지고 한마디 말과 한 번의 행동을 바로 하면 두고두고 복이 된다. 오늘은 성령강림절 스물둘째주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바르게 행동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삭개오는 로마의 압제를 받는 이스라엘의 세리장이었다. 세리는 직원이고 세리장은 직원들을 거느리는 대표다. 세리라는 직업은 로마 나라에서 중요한 직업이었는데, 세금을 받아서 로마에 납부하고 남은 것을 가지는 일이었다. 로마는 세금납부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과급으로 세리의 월급을 주었다. 지역의 세금납부 기준을 정해놓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정금액의 징수된 세금을 로마 당국에 납부하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리들은 지나친 세금을 받아서 남는 세금을 자기의 수입으로 챙기곤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의 가난한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세리장은 세리들의 대표가 되어 세리들을 강하게 독려하여 어떻게 해서든 세금을 받아오게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세리장 삭개오가 살던 여리고에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지나가시고 계셨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50km 정도, 백리길이 더 되는 길이었는데, 예수님 일행은 지나가는 중이어서 갈 길을 멈추실 뜻이 없으셨다. 여리고는 예수님이 머무실 곳이 아니라, 지나가시는 도성이었다. 그런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가 삭개오다. 우리 삶에도 무수히 예수님이 들어와 지나가시는 때가 있다. 그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나뵙는 예수님이 되게 하는 이는 복이 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곁을 지나가신다. 그분을 찾아 만나 뵙고 구원과 하늘의 복을 누리기 바란다. 삭개오는 로마시대에 동족 유대인들에게 평판이 좋을 리 없는 서기장이었다. 민족 배반자,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악질의 이미지였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의 얼굴을 보기 원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행동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3-4)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되었었다. 그러나 삭개오의 어떤 행동들 때문에,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구원받았다! 여기 삭개오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예수가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했을 뿐이다. 호기심 차원이었다. 그러나 돌무화나무 위로 올라간 것은 파격적인 행동이다. 삭개오는 생각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사모하는 마음

먼저, 삭개오는 예수가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도저히 예수께 이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삭개오는 앞으로 달려가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곳에 있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세리장은 세무서장이다. 점잖은 세무서장이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가 기다리다니! 보고자 하는 호기심 차원의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삭개오의 태도가 너무나 잘 드러나 있다. 삭개오는 처음부터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다. 삭개오는 자기의 자존심이나 체면을 돌보지 않고 주님을 만나고자 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그렇게 그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 것을 망설이거나 재고 있지 않고 행동으로 나타냈다. 예수님 우선, 진리 사모함의 간절한 마음은 성도를 하나님께로 이끌 것이다!

보고자 하되는 계속적으로 보려고 하는 상태를 표현한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며 그가 누구인지 꼭 만나려고 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주를 지향하였고(130:), 마른 땅에 단비를 기다리는 것 같이(143:) 주님을 단순하게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기다렸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어찌 예수를 볼 수 있을까? 삭개오는 자기 키가 작아 보이지 않았고 군중들에 가로막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다.’

어떤 목사님께 들은 얘기인데,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릴 때, 한 교인은 휴가를 내어 처음부터 끝시간까지 참여했는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가게 문을 닫고 은혜받는 집회에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주간에 다니엘기도가 있다. 삭개오가 주님 만나기 위해 돌무화과무 위에 올라가 기다리듯, 여러분은 다니엘기도모임에 나아가 예수님을 기다리기 바란다! 이번주간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의 기도시간이 그렇게 주님 만날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와같이 삭개오처럼 마음을 행동으로 표하는 곳에 구원의 손길이 임한다. 성령의 능력이 역사한다! 예수와의 만남, 진리의 깨달음이 바로 이런 행동에서 오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행동

삭개오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을 한다. 예수님을 만나보고자 하였으나 키가 작고 군중이 예수님을 옹위하고 몰려가는 바람에 도저히 예수님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런 상황을 핑계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삭개오는 적극적인 행동의 사람이다.

앞으로 달려가는 그가 적극적인 행동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독교는 직선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계속 주님이 군중들과 앞으로 나가셨듯이 모든 삶이 계속 앞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간은 전진한다, 역사는 진보한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관이다. 따라서 우리도 앞으로 달려가는 적극성이 있어야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삭개오는 불가능에 마주쳤지만 불가능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방법을 찾아 앞으로 전진하는 행동을 했다. 과거는 추억으로 족하다.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고 과거에 머물려 있으려 하는 사람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놓지게 된다. 삭개오는 앞으로 달려가보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행동했다.

삶에는 불가능이 많다. 많은 사람이 불가능이 두려워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달려가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 불가능이 두려워 포기하는 인생에 어떤 희망이 있으랴! 오늘은 불가능해도 내일은 가능할 것이다. 오늘은 실패하였지만 내일 꿈을 이룰 줄 어찌 알랴! 우리는 삭개오처럼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모든 시도들은 나름의 결말을 가지고 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모두 과녁에 적중하지는 못해도 우리는 시위를 당겨 또다른 화살을 운명의 과녁으로 쏘아보내야 한다.

주님을 만나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삭개오 뿐 아니라 우리들도 똑같은 문제 원인이 있다. 하나는 스스로 키가 작은 한계요, 또 하나는 가로막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일이 어려운 원인의 하나는 나 자신의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주위 환경, 다른 사람의 문제가 있다. 언제나 신앙생활에는 이 두 가지 문제가 개입된다. 자기 자신의 문제 앞에서 포기하거나, 주위 환경과 다른 사람의 문제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은 절대 영적인 성취나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자기의 한계와 주위 환경의 제약을 핑계하며 주저하는 사람은 예수님 만나 위대한 미래를 꿈꾸어 갈 수 없다!

기독교는 앞으로 나아가는 종교다! 축복은 항상 미래에 있다. 모든 좋은 것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을 잊지 말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복을 내리신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의지하여 가나안으로 전진할 때 축복을 받았고,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결단하여 앞으로 나아갈 때 가나안을 차지했으며, 사도 바울이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갈 때 하나님께서 사명의 위대한 길을 허락하셨다. 축복은 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손에 잡힌다.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 돌무화과나무

또한, 삭개오는 자기 극복의 결단을 하였다.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삭개오의 모습은 자기를 극복하려는 결단을 보여준다. 군중들에 가로막히고 자신의 키가 너무 작았기에 삭개오는 예수님과 만날 수 없었다. 이런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에 올랐다. 나이 지긋하며 사회생활도 할 만큼 한 삭개오 입장에서 작은 키를 극복하려 마을 안의 작은 나무에 오르는 행위는 체면 깎이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자기 자존심보다 예수님 만나는 것, 그분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 그분을 내 인생의 왕으로 모시는 것이 훨씬 중요했기에 그는 기꺼이 자기를 내려놓고 그 키작은 나무에 올랐다.

은혜를 사모하여 낙심하거나 원망함이 없이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기 믿음의 키를 크게 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영적인 돌무화과나무가 준비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종하여 자기 아들을 잡아 바치려고 할 때 떨기나무 사이에 어린 양을 준비해주신 여호와이레의 은혜는 오늘에도 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순진하게 노력하며 다가가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두 발자국 다가오신다. 우리 영의 키를 높이셔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하신다.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니 예수님이 잘 보였다. 그리고 예수님 보시기에도 삭개오가 높이 드러나 잘 보였을 것이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은혜의 돌무화과나무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러분은 서로에게 은혜와 축복의 돌무화과나무가 될 수 있다. 함께 봉사하거나 전도하는 짝이 그런 영적 도움의 존재가 된다. 중보기도 짝이 우리 영의 키를 돋우어주는 나무일 수도 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애쓰느라 집회에 참석 못 하고 낙심하는 젊은 새댁을 위해 누군가 찾아가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서 함께 교회에 나온다면, 그분이 바로 은혜의 돌무화과나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에 바빠 꼼짝 못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고 일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사람이 바로 도움의 나무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서 기도를 맡았는데 걱정이라고 어떤 목사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목사님은 그분의 사정을 듣고 기도문을 써주었다. 그분은 그 기도문에 자기가 다시 정리를 해서 외워서 기도를 했는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잘 대변해주고 은혜받았다고 큰 칭찬을 받았다. 그걸 기회로 더욱 기도하게 되었고, 회중기도에 자신을 얻어서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경우에 그 목사님이 그분에게 도움의 나무가 된 것이다.

어떤 기구나 조직이 여러분에게 돌무화과나무가 될 수 있다. 속회도 연약한 성도들을 도와주어 믿음의 키를 크게 해주는 키작은 나무가 된다. 지난해에 어떤 속회는 크게 부흥했는데, 원래 믿음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믿음의 키를 키워주는 도움의 나무가 되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속회의 진정한 역할이다. 선교회가 여러분을 예수님께 이르도록 믿음의 키를 키우는 선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은혜의 방편인 기도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삭개오는 8-10절에 주님과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다. 주님과의 대화, 소통, 이것이 바로 기도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는가? 오늘부터 시작되는 다니엘기도회는 바로 기도하는 자리이다. 저녁 8시부터 찬양하고, 이어서 헌금드리고 간증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30분 기도하게 되어있다. 영적인 시험에 들고 인생의 실패를 겪은 후에, “기도하지 않은 내 탓이야!” 하고 탄식하기 전에 주님이 주시는 은총의 기회를 사용하자!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 가운데 참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은혜의 방법이다. 무엇보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 거룩하게 한다. 한 가정에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의 사람이 있을 때, 그 가정에 얼마나 큰 복이 되는지 모른다. 특히 기도하는 부모를 둔 자식보다 행복한 자식은 없다. 예수님께서 골고다를 향해 십자가 지시고 올라가실 때 따라오면서 우는 여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존 라이스 목사님이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날 때, 잘 인도해 주실 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떠났다. 그런데도 그만 길을 잘못 들어 30마일 이상이나 지나가게 된다. 어느 주유소에 들어갔는데, 거기 있던 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전도하게 되었단다. 그랬더니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은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기도하고 하는 일에는 후회함이 없고, 잘못되었더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라. 그리하여 여러분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도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2시간씩 성경보고 기도했다. 우리나라의 새벽기도는 길선주 목사님이 시작했다. 당시 교회의 젊은 조사, 전도사였던 길선주는 개인적으로 새벽기도회를 드리다가 당회에 몇 번씩이나 부결되어도 굴하지 않고 새벽기도 할 것을 청원하다가 드디어 받아들여지자 새벽기도회의 주역이 되었다. 당시 교인들은 새벽기도회 종소리만 들어도 울면서 예배당에 나와 기도했다고 한다.

 

오늘 여기에 구원이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 집으로 모셨다. 오신 주님은 삭개오 인생의 왕이 되셔서 그를 다스리셨다. 할렐루야! 결단하고 나오는 삭개오에게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하였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려 하나 모두가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시듯 이번 주간에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어 지나가고 계신다. 오늘 여기에 구원이 임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모두가 삭개오와 같이 행동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다시금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신다.

삭개오 같은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라! 마음을 다하여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앞서 달려가고, 삭개오와 같이 자기 형편과 처지를 극복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서라!! 무엇보다 가을의 한 주간 동안, 기도에 깨어있기로 결단하라!! 그리하여 베푸시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 바란다. 예수님은 살아계시다! 지금,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바라보시며 구원과 능력을 베푸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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