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18-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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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다니엘7:9-14 |
설교제목 | 왕이신 나의 하나님 |
왕이신 나의 하나님
단7:9-14
2018년 11월 25일 [성령강림후 마지막주일, 왕국주일]
옛날 왕진의사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던 중년 남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깜짝 놀란 아내가 황급히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는 도착하자마자 말했습니다. “부인, 잠깐 나가 주세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1분이 지나자 의사는 시무룩한 얼굴로 밖으로 나와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펜치 좀 주십시오.” 부인은 서둘러 펜치를 찾아 의사에게 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5분이 흐른 뒤 얼굴이 시뻘게진 의사가 또다시 밖으로 나오며 말했습니다. “안되겠습니다. 드라이버랑 망치도 좀 주십시오.” 아내는 ‘도대체 무슨 병이기에…’라고 걱정하면서 연장들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5분이 또 지나자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의사가 문 밖으로 나오며 톱을 달라는 것이었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아내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방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도대체 무슨 병이기에… 죽을병인가요?” 그때 의사 왈, “부인, 진료 가방이 안 열려요!” 병 고치러 와서 병은 다뤄보지도 못하고 왕진가방만 고친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은 대강절 첫 주일이며, 예수 오신 성탄절을 향해 준비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탄생, 삶, 죽음, 부활을 거쳐 성령 절기를 길게 보내고 마침내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에 도달하는데, 이 주일은 또한 그리스도 왕 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왕이며 또한 우리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한 아기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닫힌 왕진가방처럼 꽉 닫혀있지 않고, 주님을 향하여 열려 있어, 말씀을 통하여 왕 되시는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마음에 모셔드리는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계약백성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착 처음부터 왕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 왕이 될 작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고 누구의 주관도 받지 않으려는 자유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나 스스로가 왕이 되어 사는 인생에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죄악이 지배하기 때문에 타락과 갈등과 불화와 고통이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왕이 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고, 예수가 왕이 되실 때 마음이 평안해지고 사람들 사이가 평화로워지며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은 왕이시오 주이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세상 나라들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니엘의 여러 환상 중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그려준 말씀입니다. 특별히 다니엘은 환상을 보는 중에 종말에 이뤄질 일을 예언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왕으로 보좌에 앉아 다스리시는 모습을 그려줍니다. 인생 중에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순간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순간이라고 다니엘은 선포합니다.
찬송하라!
왕이신 하나님은 위대하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왕좌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9절) ‘그의 옷은 눈 같이 희고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으며 불의 강이 그로부터 흘러나옵니다(9-10절).’ 우리는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그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림이 마땅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을 높은 데 계시는 ‘절대 타자’이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결코 같을 수 없는 절대적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높은 곳까지 높일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우리 삶은 비로소 질서와 내용을 되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찬송 부르는 것은 세상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세상 노래는 사람들 들으라고, 사람의 감각에 맞춘 노래이지만,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듣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려고 만들고 부르는 노래가 찬송입니다. 마음을 기울여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의 왕권이 더욱 확고해집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홀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어릴 적 아버님 목회하시던 교회에 은사 체험하는 이들도 많고 귀신 역사도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귀신들은 찬송을 부르면 즉효가 있었습니다. 마귀가 벌벌 떨고 소리 지르며, 직접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찬송이 신령한 역사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찬송은 왕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행위입니다. 이때 마귀는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 떨며 물러갑니다. 11월 1일부터 세이레 동안 100명에서 150명가량의 교우들이 매일 나와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간증의 말씀도 특별했고 기도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찬송이 정말 은혜로왔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는 우리의 노래입니다. 결국 찬송이 좋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일 때 우리에게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어려울 때 찬송하십시오. 시험이 올 때 찬송을 부르세요. 마귀가 역사할 때 찬송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랜 전에 필리핀 마닐라에 갔을 때 대나무 오르간 연주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 교회당에 들어섰을 때, 뱀부 오르간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그 신비한 울림과 오묘한 화음, 전체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리의 어울림과 뻗음은 소름이 끼치도록 아름다웠습니다. 한번 지나가버리는 소리지만, 뇌리와 기억 속에 두고두고 그 잔향을 남겨 영혼을 소생시키고 거룩함으로 이끄는 것을 느꼈습니다. 입술로 하나님이 왕이시며 우리 주시라고 인정하시고, 찬송을 통하여 왕이신 하나님 높이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우리 영혼도 높아지고 보석처럼 고결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고! 우리를 그의 종으로 인정하며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평안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섬겨라!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분 앞에 엎드리고 예배와 활동을 통하여 그분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모셔 선 자는 만만입니다(10절). 참 제자가 되려면 내 소리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내 안에 사십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주님 들어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을 섬겨야지 내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이런 교인들의 잘못된 믿음을 ‘내가 복음’ 혹은 성경에도 없는 ‘제5 복음’을 믿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르티즈 목사님은 아르헨티나의 부흥목사인데, 아르헨티나 교회에는 영적 어린아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어른스러운 믿음, 주님을 섬기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만 위해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도 같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섬기는 삶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 중심의 믿음에서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영적 성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함이 믿는 이의 마땅한 도리이며, 우리가 섬길 때 성령이 역사하고 생명이 충만하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 소위 교양 있다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경배하기 보다는 자기만 위로 받고 대우 받기를 원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는 그분에게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영어로 예배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worship service’ 즉 ‘가장 가치 있는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존재의 충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경배하는 일에 소홀한 자는 축복 받는 일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경배하고 섬길 때, 놀라운 은혜와 복이 임합니다.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무리한 하나님의 요구 앞에 모리아 산까지 올라가 지극한 정성으로 경배하며 섬겼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하나님을 경배하였던 여호수아는 자손의 대대로 복을 누리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폐허가 된 땅에서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려던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눈물의 전에서 회복의 충만한 은혜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심각하게 앓고 있는 영적인 에이즈인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나십시오! 하나님을 여러분 마음의 왕으로 모셔드리십시오! 어거스틴이 무서운 영적 질병으로 경계하였던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김으로 왕으로 모시십시오! 내 마음과 생활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어 나를 다스리시게 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모든 죄가 떠나가고,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며, 영적으로 성장하여,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따라 가라!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나운 네 마리 짐승은 모두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11절).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사무엘이 불순종하는 사울에게 한 말을 기억합시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15:22-23) 사람 좋은 사울 왕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종을 통해 전해주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왕에게 백성과 신하는 순종이 있을 뿐입니다.
과거 조선시대 여인들은 여자의 일생을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로 요약하였습니다. 이는 세 가지 따름의 도리라는 것으로, 여자는 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따라야 하고, 장성해서는 지아비를 따라야 하며, 늙어서는 아들의 명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대표적인 가부장제의 가르침입니다. 요즈음 여자들에게 이것을 강조했다가는 코웃음 칠 것이 뻔합니다. 그러나 남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는 진정 따라야 할 분이 있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종지도(一從之道)가 있습니다. 예수를 거역하는 것은 무서운 죄이기 때문에 징벌이 따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13-14절) 예수님 말씀, 예수님 뜻을 헤아려 그대로 행하기에 힘쓰십시오, 그에게 하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셨고, 모든 나라 백성들이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왕이요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왕권이 바로 서려면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의 형님인 분이 구치소에 계셔서 관계된 어느 목사님이 면회 갔습니다. 이미 현직에서 은퇴하신 장로님이십니다. 가서 보니까 바짝 말랐더래요. 그전에 간다고 했더니 오지 말라고 해서 들어간 지 100일 되는 날에 면회를 간 것입니다. 그 몇 달 사이에 7kg이 빠졌더래요. 내적 갈등이 얼마나 심했습니까? 사실은 한 달 사이에 7kg가 빠지고 ‘이래서는 안 되지, 살아야지.’하고 그 후에 관리해서 더 빠지지는 않았답니다. 들어가서 보니까 자기는 교회 장로인데,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이 1%도 안 되더래요. 하나님의 은혜로 장로도 되고 동생이 대통령도 되었는데, 자신의 모든 관심이 세상, 권력, 국회의원 자리, 명예에 있었다는 겁니다. 자신을 돌아보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일한 것이 너무 없었다고 뼈아프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는 순간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공적인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또 내 성공과 명예가 없더라도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그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우리 인생은 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나는 그분을 따라가는 생활, 그분이 왕이시고 나는 그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2)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김영범)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역임한 분이 대사직을 마치고 떠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나라 백성이 노벨상을 제일 많이 받았나? 알아봤더니 딱 한 가지였다. 성경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로 기독교인들이었고, 두 번째로 유대인들이었다.” 성경을 가까이 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왕이요 주로 삼은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면 가장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큰 상인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유대인들이 1,300만 명밖에 없는데 노벨상을 25-30% 받았습니다. 인구비례로 보면 기독교인들보다 더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인식을 하는데 자녀들에게 옷도 해주고, 부자들은 자동차도 사줍니다. 그 성인식 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완전히 왕으로 모시도록 결단하게 합니다. 그러면 부모가 할 일은 다 끝난 것이지요. 하나님이 왕이 되면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부모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제일 많이 받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고 섬기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일해주시니까요!
강철 왕 카네기의 어린 시절 일화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식료품 가게에 갔습니다. 어머니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카네기는 앵두 상자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어요. 이 모습을 본 주인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먹고 싶으면 한줌 집어라.” 하지만 카네기는 손을 내밀지 않고 앵두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보다 못한 주인은 기특하다는 듯 미소를 띠며 한줌 가득 앵두를 집어 카네기에게 주었습니다. 가게 문을 나설 때 어머니가 물었어요. “왜 처음에는 안 잡았니?” 어린 카네기는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 손이 내 손보다 훨씬 크잖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합한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크고 힘이 세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시니 또한 우리의 왕으로 바르게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 인생을 잡으실 때 우리 삶은 더욱 온전해지며 풍성해질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높입시다! 왕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깁시다! 왕이신 하나님을 늘 따라갑시다! 그리하여 왕의 자녀, 왕의 백성, 왕의 신하가 된 축복과 은혜를 우리와 우리 자손이 마음껏 누리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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