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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는 마음 (역대하1:7-13) {2025년 4월 27일, 부활절 둘째주일]
2025-04-26 14:10:47
박신진 목사
조회수   14
설교일 2025-04-27
설교말씀 역대하1:7-13
설교제목 지혜를 구하는 마음

지혜를 구하는 마음

역대하1:7-13

2025427[부활절 둘째주일]

 

우리 사회는 초고속으로 급변하는 사회이다. 생활이 변하고, 의식이 변하며, 사회 조직이 변하고, 대인관계가 변하고 있다. 외국 생활 20년 하고 귀국한 어떤 목사님은 의식주 얼마나 급격하게 변했는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세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면서 정보의 소통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하는 데에 목표를 두었다한다. 얼마나 변화의 속도가 빠른지 가만히 앉아있으면 금방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만다. 시대변화를 빨리 읽고 그 변화에 발맞추어 가려고 발버둥을 쳐야 뒤처지지 않는다. 최근에 내가 제일 놀라는 것은 스마트폰이 생활 속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달문화이다. 시장에 가거나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냥 배달앱으로 장을 보고 물건을 사며 음식을 시키는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를 불과 몇 초 안에 정리하여 알려준다. 스스로 딥러닝을 하여 공부가 다 되어 있다. 문제는 내가 질문 능력, 정보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질문은 그런 대답을 인공지능으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 ‘이번 주의 날씨를 알려줘. 비가 올 가능성과 산불이 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물어본 즉시 자세한 대답을 받을 수 있다.

그 나라 문화의 성숙도는 길로 알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길의 변화를 우리는 급격하게 느끼고 있다. 어릴 적 서울 청량리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안동에 저녁에 도착했다. 지금은 두 시간 남짓 걸리면 도착한다. 서울에서 원주를 오려면 일주일을 꼬박 걸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KTX로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서울과 대전이 고속전철로 한 시간이 못 걸리고, 서울 부산이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시대이다.

이렇게 빨라지고 발전하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독일의 아오토반은 시속 200Km가 넘어가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그렇게 빠른 대신 한번 사고가 나면 부상이 적고 그냥 사망이라고 한다. 우리 시대는 초고속 급변사회이기 때문에 그만큼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시대변화를 추종할 것이 아니라, 지혜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혜를 가지고 이 급변하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들이 되라!

 

솔로몬,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세 번째 왕이다. 사울은 과도기의 왕이었기 때문에 왕권이 분명히 서지 못하였다. 다윗은 존경받고 사랑받는 왕이었다. 그 이후에 왕이 된 솔로몬은 형제들의 피를 보면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정통성 시비도 있었고, 출신도 떳떳하지 못했다. 바로 선왕 다윗의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시대는 온 백성을 강력하고 권위있게 다스릴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가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번영한 시대를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성서는 왕의 믿음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솔로몬 치세를 보여주는 역대기하는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천마리의 희생제물로 번제를 드린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솔로몬은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얼마나 그 자리가 힘들고 어려운 때인지를 알고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다. 일천 번의 번제라기보다는 일천 마리의 번제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정성을 드리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솔로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축복권을 인계해 주신 것이나 다름없는 놀라운 말씀이다. 뭐든지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는 말씀이다. 솔로몬은 선뜻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솔로몬은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정말 감동하셨다. 그 마음이 흔쾌하셔서 전무후무한 축복을 내리신다.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11-12)

 

지식도 있어야 하겠으나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지혜이다. 최고학부를 나와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사람은 허다하다. 그러나 지혜가 있어 때를 따라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적당한 자리에 앉아 적당한 마음을 쓰고, 적당한 말을 해서 모든 사람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그리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지식은 있으나 지혜는 없는 겉똑똑이, 헛똑똑이들을 우리 사회는 양산하고 있다. 교회가 지혜로운 사람을 길러내야 하고, 우리 시대에 지혜를 전파하는 공장이 되어야 한다.

지혜란 무엇인가? 사물의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쌀을 익히지도 않고 먹을 수는 없다. 먼저 물에 담아 놓고, 쌀을 씻어 밥솥에 넣은 후, 적절한 시간을 가열하고 끓여 밥을 지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우짜됐든바늘귀에 실을 꿰어야지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잘 파악하라.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 앞세워야 할 것과 뒤에 두어야 할 것, 시급한 것과 시급하지 않은 것, 높여야 할 것과 낮춰야 할 것을 파악하면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먼저 인생의 근본목적을 잊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 지혜다. 그러면 모든 삶이 든든히 서고, 쉽게 풀린다.

지혜란 분별하여 선택할 줄 아는 힘이다.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사야할 것과 사지 말아야 할 것,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인생은 매일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천양지차로 갈린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빵빠레가 울리며 축하한다는 밝은 목소리의 여성이 나왔다. ‘선생님은 우리 아무개 회사에서 보내드리는 명품 물건을 받으실 수 있는 특권에 당첨되셨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아유, 그래요? 고맙네요. 받지요, .” 그랬다가는 바가지 쓰는 것이다.

삼척시내에도 건물 지하나 이층 공실에 세 들어 놓고 할머니들 우려먹는 장사꾼들 있다. 휴지, 바가지, 쓸 만한 작은 기념품들을 막 푼다. 심심한데 이렇게 재미있게 해주고 물건도 공짜로 주다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아저씨들이 어디 있나? 기분 좋아서 동네 아줌마들 다 모인다. 그러면 진짜 비싼 건강 약품이나 기구를 선전한다. 몇 개만 팔면 본전을 건지고 남는다. 그래서 비싼 거 사들여서 자식들까지 부담되게 한다. 제발 지혜로우라! 바로 분별하여 바르게 선택하라. 늘 천박하고 유치하고 위험한 것을 선택하려 하는 본성이 사람에게 있다. 그럴 때마다 지혜롭게 분별하라!

지혜란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다. 급한 것만 늘 해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늘 급하게 쫓겨 다니다 삶을 허비하고 만다. 아무리 급한 일이 많아도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농사꾼을 말하는데, 상농 중농 하농이 있다. 하농은 벌레를 잡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는 농사꾼이다. 이미 벌레가 번성하고 나서 그 벌레를 잡아내는 데 많은 수고를 하지만, 실제 결실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보다 좀 나은 중농은 종자를 개발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이는 농사꾼이다. 씨앗이 좋으면 병충해에도 강하고 잘 자랄 수 있으니 좋은 품종의 종자는 농사의 성패를 결정한다. 상농은 무엇인가? 그들은 땅을 비옥케 하는 농사꾼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면 잘 자라고 병충해도 생겨나지 않는다. 남들이 놀 때 겨울에도 거름을 지고, 비료를 해대는 사람들은 농사철에 노래를 부르며 여유 있게 농사를 지어도 큰 수확을 거두게 된다. 이런 사람이 상농! 지혜로운 농사꾼이다!!

여러분에게 오늘 급한 것은 무엇인가? 당장 밥 먹고 청소하고 학교 수업 듣고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급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급한 것을 하는 바쁜 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를 뽑았다. 그들은 대단한 믿음의 용사들이어서 순교자도 나왔고 전도자들도 나왔다. 그들을 뽑을 때의 기준을 행 6장은 말해준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3) 오늘날 교회에서 필요한 사람, 오늘날 이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령 충만한 사람, 지혜 충만한 사람,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여러분은 지혜 충만한 사람이 되라!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10:23)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9:9-11)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라. 마음을 지혜롭게 가지면 무리가 없고 평안하다. 마음을 미련하게 가지면 늘 피곤하고 번잡하다. 분수를 알고 무리하지 않는 마음의 지혜를 주소서! 마음의 지혜가 우리를 평강한 길로 인도한다.

지혜로운 말을 하라. 말의 지혜는 의사를 소통하며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여 일이 잘 되고 내 마음이 기쁘게 한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 다변은 눌변보다 못하다. 웅변은 은이나 침묵은 금이다. 꼭 필요한 말은 은쟁반의 금 사과와 같다고 잠언은 말하였다.

지혜로운 행동을 하라. 섣부르게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더디 가더라도 바르게 가야 한다. 집을 섣부르게 지으면 그 집을 얼마 지나서 헐어야 하고 엄청난 쓰레기를 치워야 하고 그리고 빈 터에 다시 지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이 느린 것 같지만 기초를 잘 세우고 준비를 잘 한 뒤에 무엇이든 하기 때문에 반복하거나 뒤집어야 하는 잘못이 적다. 기초를 잘 다지라. 기본기를 잘 닦아야 한다.

 

교회에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다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안 하는 게 지혜로운 것이다. 양보하는 게 지혜로운 것이다. 물러서는 게 지혜로운 것이다. 최근 몇 년에 물러서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 물러서지 말라고, 당신이 차례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물러섰다. 지나고 보니 참 잘하였다. 하나님이 막아주신 것이다. 오래 전에 지방 감리사를 지낼 때, 난제들이 있었다.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십시오.’ 그것이 나의 기도 제목이었다. 우리 교우들을 생각해보니, 우리 삶에도 난제가 많다. 회피하지 말라. 괴로워하면서 변명하고 도망 다니지 말라. 문제에 맞서라. 그러나 감정으로, 성질로 맞서지 말고, 하나님 주시는 지혜로 대처하라.

지난 주간에 동부연회에 다녀왔다. 교회 전체 공동체인 교단에도 난제들이 많다. 그런 문제들의 많은 부분들이 해결되는 곳이 연회다. 장정유권해석위원회를 맡았기에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어떤 지방의 감리사 후보자격 문제를 유권해석하게 되었다. 위에서 본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무려 1시간 이상 논란을 벌였다. 결론은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감리사 자격이 있다로 해석하였다. 그날 저녁에 보니까 그 사고지방이 감리사를 선출하였다. 물론 많은 문제와 의문이 있겠지만, 어쨌든 연회라는 조직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지혜가 필요하다, 생각을 지혜롭게 하고, 말을 지혜롭게 하라! 행동을 지혜롭게 하며,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가지라. 지혜로운 말 한마디이면 살인을 면한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온갖 지혜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사실에 근거하고 확실한 논리로 어떤 결론을 내려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우리 삶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 이방인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 들을 때 성령이 임했다. 10:44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라고 되어 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임하여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방인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고넬료의 집에 임한 성령강림 사건이었다.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일하신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감동이 될 때, 말씀이 사람을 움직일 때 성령이 역사한다.

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은 한결같이 지혜로왔다. 그러나 지혜는 성령이 임할 때 온전해진다. 모범적인 성도들은 지혜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의 지혜는 성령의 도움을 받는 지혜였다. 마틴 루터, 얼마나 열정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인가! 학창시절에 법을 공부하려다가 친구하고 같이 길에서 번개를 맞아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과 하나님의 영원함을 깨닫고 신학으로 돌아선 사람이다. 루터는 공부도 잘 하고, 시도 잘 쓰고, 음악도 잘 했다. 지혜로왔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그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 탑에서 기도하며 성경을 번역하다가 말씀을 깨닫고 성령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역사를 바꾼 것이다. 요한 웨슬리,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가! 옥스퍼드 대학을 나오고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올더스게잇 거리에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성령체험하고 가슴이 뜨거위지지 않았다면, 감리교 운동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지혜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공간이 있는데, 바로 기도하는 자리이다. 기도가 우리 삶을 성령이 함께 하는 지혜로 이끈다. 기도가 능력이고, 기도가 금보다 귀한 보배이자 재산이다. 골프 치다가 방언을 받거나, 노래방 가서 은혜받는 경우가 있는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교회에서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을 받는다. 방언이 터지고, 기도와 말씀이 연결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된다.

 

솔로몬은 참 어려운 왕위에 올라 흔들흔들할 때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과 관계를 바르게 하였고, 나아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다. 어려운 가정이 있는가? 삶의 난제를 만났는가? 먼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그런데 지혜는 성령 충만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성령이 함께 하는 지혜를 찾으라! 지혜를 붙들되 성령의 인도받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지혜를 구하는 마음, 이것이야 말로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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