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1-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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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느8:5-12 |
설교제목 | 회복의 은혜 |
회복의 은혜
느8:5-12
2021년 6월 20일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요즈음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교생활에 제약을 받기 시작한 지 세 번째 학기를 마쳐가는 시험기간이다. 시험치느라 힘든 학생들을 위해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드리겠다. 신학교의 시험 기간이 되어 신학생 한 명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신학생은 공부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답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너무 고민스러운 나머지 백지는 낼 수가 없고 시험지 맨 아래에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모든 정답을 아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답에 동의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 교수님이 시험을 채점한 성적표가 나왔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하나님은 100점, 너는 빵점.” 시험은 성령도 벌벌 떤다는데, 최선을 다해서 이 코로나 시기에 학업에 좀 더 힘을 내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라!
코로나 백신이 백성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여러분은 백신을 맞았는가? 두 번째 백신까지 맞은 사람들은 야외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되고, 교회의 코로나 제한 집회 인원에서 열외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도 6월 초순에 백신을 맞았는데, 큰 부작용이나 고생 없이 잘 지나갔다. 그런데, 코로나 방역 사회적 거리두기를 벌써 일년 반을 하고 2년이 되어가니까, 지치고 힘이 빠지는 것 같다.
‘될 대로 되라!’ 이런 자포자기 심리가 들어오려고 한다. 너무 오래, 너무 얽매이면서, 부자유하게 생활을 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지치는 것이다. 신경질적이거나 화를 잘 내고, 별것 아닌 일에 싸움을 거는 일도 잦다. 이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위로가 필요하다, 회복이 필요하다. 기쁨이 필요하다! 다시 생기를 얻고, 힘을 내야 한다.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마음과 몸이 가라앉는 것을 어쩌지 못하겠다.
살아가다 보면 이유없이 낙심하고 힘이 빠질 때가 있다. 나름대로 큰 문제 없이 잘 산다. 사업이나 직장도 무난하고, 부부도 크게 불화하지 않으며, 속 썩이는 자식도 없고, 대인관계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재미가 없고 신이 나지 않고 그냥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해지면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적 탈진현상, burn-out이라 한다. 우울증 초기단계 같은 것인데, 열심히 살다가 지쳐버리는 것이다. 힘도 못 써보고 중단하는 경우이다. 현대인들에게 소생함을 주는 신선한 기운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이유 없이 탈진하고 침체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오락, 휴식, 휴가,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지만, 사람의 방법은 진정한 소생함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의 방법은 회복되는 것 같다가 다시 떨어진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큰 자극, 더 높은 요구를 채워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을 가장 잘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이 만져주시고 위로하시고 일으켜주시면,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될 것이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28-29; 31)
이 시간 여러분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나누기 원한다. 여러분 모두가 지루함과 탈진,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침체를 극복하고 새 힘을 얻는, 회복의 은혜를 힘입기 바란다.
느헤미야는 무너져 150년간이나 폐허가 되었던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다시 짓는 사명을 가지고 조국에 와서 일했다. 페르샤의 높은 직책을 버리고 유대땅에 와서 일할 때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산발랏 도비야 일당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는 얼마나 지독했는가! 동족의 반대, 알 만한 사람들의 훼방은 몸과 마음이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 고생 속에서도 느헤미야는 52일 만에 공사를 완성했다. 예루살렘 성은 외부의 침략에 방어할 수 있는 튼튼한 성벽을 지었고,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안정감을 얻었다.
그러나, 성벽과 성문은 재건되었으나 그들의 심령은 아직도 황폐하고 탈진되어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져주시고 보호하실까? 산발랏 도비야의 무리들과의 갈등과 싸움은 언제 해결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영광은 회복될까?’ 그들의 영혼의 성벽은 회복되지 않았다. 성벽과 성문과 같은 삶의 외형적인 조건 못지않게 그들의 삶에 필요한 것은 마음의 소생함이며 영혼의 회복이었다. 느헤미야는 신실한 신앙인이요 지혜로운 지도자이다. 그리하여 성벽과 성문을 재건한 후, 먹고 마시고 축제를 하자고 하기 전에, 영혼의 회복을 도모한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 낙심한 마음이 소생함을 얻고 무너진 심령들이 새 힘을 얻는 회복의 은혜를 사모하였다. 그리하여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말씀 회복운동을 시작했다. 회복의 은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말씀을 새롭게 읽고 듣고 새김으로 일어난다. 여러분, 누군가 심령과 생활이 지치고 낙심되며 침체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가 임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생활에 말씀을 회복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첫째로, 여러분 마음 속에서 성경말씀의 권위를 회복시키라! 성경읽는 것이 귀해지고 말씀 듣는 시간에 정신이 번쩍 나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회복의 은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라!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함께 성경말씀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말씀을 전하는 에스라가 강단에 설 때 백성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일어났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경배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앉아서 듣지 않고 6시간 동안이나 서서 들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동일하게 성경도 경외합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말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안내위원들이 성경책을 가지고 출입문에 들어옴으로 예배가 시작된다고 한다. 안내위원들은 가지고 들어온 성경책을 강대상 위에 올려놓고, 그날 봉독하게 될 부분을 펼쳐놓은 다음, 목사를 강단으로 안내하여 모신다. 성경책이 교회로 들어올 때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경이 강대상 위에 펼쳐지고 목사가 강단에 올라 성경을 봉독하는 것을 끝낼 때까지 모든 성도들이 서 있는다.
원래 개혁교회는 성경을 읽을 때 서서 듣곤 했다. 요즘은 성경봉독 시간에 일어서지는 않지만, 그런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 성경 읽을 때 서서 들었을까? 성경말씀과 설교나 강해를 사람의 말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히 여기며, 말씀 읽기와 듣기와 배우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은 회복의 은혜를 얻는다. 말씀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있어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 디모데후서 3장에 있는 말씀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쓰여진 성경과 들려지는 설교와 전해지는 복음을 사람의 말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있게 들으라! 그러면 심령이 회복되고 병든 육체도 고침을 받는다.
둘째로,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을 때 회복의 은혜가 임한다. 느헤미야 시대 사람들이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게 되었다. 에스라가 성경을 읽고 많은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 사이에 서서 선포되는 말씀을 설명해주어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牛耳讀經(우이독경), 馬耳東風(마이동풍)처럼, 말씀이 지나가기는 하는데 거의 깨닫지 못한다면 회복의 은혜가 임할 수 없다. 말씀을 포착하라,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산다!
설교와 강해를 들을 때에 집중해야 한다. 잘 듣는 사람이 복이 있다. 설교를 들을 때, 보통 사람들의 뇌파는 설교의 진행보다 일곱 배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의지적인 노력으로 설교에 집중하지 않으면 잡념에 지배를 당한다. 성령은 말씀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에게 더욱 강하게 역사하신다. 특별히 심령이 탈진되고 침체에 빠진 영혼들은 스스로 분발하여 말씀 듣기에 더욱 힘쓰라.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을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행17:11-12).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을 정독하라! 말씀을 대충 읽어 읽었다는 자랑만 할 게 아니라, 그 말씀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낭독하고 음미하며 은혜받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말씀을 베고 자고, 수면제 삼아 취침 전에 조금, 틈날 때 잠깐, 나태하게 대하다보면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말씀을 늘 가까이하되, 시간을 정해 집중하고 정독하면 말씀에서 능력이 나온다. 웨슬리는 20대 이후로 평생동안 아침에 일어나 말씀을 정독하고 기도하였으며, 저녁에는 하루의 일기를 적었다. 이런 생활을 할 때 은혜의 강이 흘러 감리교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최근에 신앙과 지성사에서 권당 6-7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 다섯 권으로 편찬된 <존 웨슬리 저널>이란 제목의 웨슬리 일기를 보면, 어느 날 웨슬리가 흑인 여종을 만나 복음을 아느냐고 물으니 복음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웨슬리가 그 여종의 귀에 대고 복음의 핵심내용을 전해주었는데, 그 총명하고 순진한 흑인노예는 얼마나 주의 종이 전해주는 복음을 집중해서 들었는지, 며칠 뒤에 만났을 때 그 전해준 복음을 거의 그대로 틀리지 않고 다 외우더라는 것이다. ‘듣는 귀가 복이 있다!’
셋째로, 말씀 앞에서 회개할 때 회복의 은혜가 임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문 앞에서 학사 에스라가 읽는 말씀을 듣고 깨달았을 때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성결한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알고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9절에 보면 레위 사람들이 울지 말라고 말려야 할 정도로 그들은 말씀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요시아왕은 힐기야 대제사장이 하나님 말씀 읽을 때 자기 옷을 찢으며 회개하여 부흥의 시대를 가져온다.(왕하22:) 루터의 종교개혁은 말씀 앞에서 회개함으로 시작된 개혁운동이고,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올더스게잇 거리집회에서 말씀에 부딪쳐 회개함으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이었다. 말씀은 우리를 회개에 이르게 한다. 회개야말로 마음과 생활에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런 회복은 병든 육신까지도 고침받게 한다!
말씀 앞에서 선한 고민을 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는 것은 참으로 복되고 귀한 일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말씀을 들을 때 칭찬과 격려만 있지 않고 질책과 부딪힘이 있어야 한다. 쓴 약과 같이 받기 어렵지만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으니,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회개하라! 그때 진정한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자존감이 높아 회개를 잘 하지 못한다. 말씀이 부딪히면 회개하지 않고 반발하고 도망가버린다. 회개해야 회복된다!!
우리교회는 코로나시대를 극복할 언택트 사역의 일환으로 로마서 8장을 암송하는 ‘롬팔암송훈련’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아이 엄마 아빠, 젊은이들이 많이 참석하여 거의 스무 명이 되었는데, 막상 계획을 듣고 시작하려 하니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 기타 생활의 문제 때문에 절반이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여덟 명이 사역자 4명과 함께 모두 12명의 롬팔암송팀이 꾸려지게 되었다.
39절이라는 엄청난 분량을 두 주 만에 외우고, 마지막 주는 암송훈련과 수학여행까지 해서 마치는 3주간의 성경암송 계획이었다. 첫 주간을 지나 20절을 외웠을 때는 과연 전체를 다 암송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외우는 게 많이 어렵고, 비슷비슷한 단어와 구절이 너무 헷갈리고, 줌으로 외우기 때문에 서로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둘째 주에 들어섰을 때 점점 외우는 데 힘이 붙었다. 둘째 주 끝에 가서 마지막을 암송할 때는 비로소 이제 다 외울 수도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마지막 주간에는 전체 39절의 말씀을 연이어 통째로 외우는 일을 계속하였는데, 수학여행 갔을 때는 숲속에 들어가서 외웠고, 마지막 리허설 때는 말씀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기쁨으로 암송하였다. 멋도 모르고 겁도 없이 우리는 말씀 암송을 시작했는데, 도저히 할 수 없고 되기 어려웠으나, 말씀을 읽고 외우고 익히니 그 말씀이 암송되기 시작함을 경험하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롬팔암송 할 수 있다!” 분명히 성령께서 도와주셨다~ 말씀을 암송하는 동안 내가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영혼을 읽어내고 만지시기 시작함을 느끼게 되었다. 정말 모든 참가자들이 말씀 앞에서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다!!
회복의 은혜가 임할 때 큰 구원의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기쁨이다. 죄인은 기뻐할 이유가 없으나 죄를 회개하여 용서와 구원을 발견한 사람은 기쁨이 넘친다. 3세기의 순교자였던 사이프리안은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영원한 기쁨을 발견했다는 글을 남겼다. 회복의 은혜는 환경과 여건을 넘어서는 기쁨을 우리에게 준다. 말씀 안에서 우리 심령이 변화되면 성령께서 날마다 시간마다 넘치는 기쁨을 주신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은 가난하고 어려운 생활, 거지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 주시는 기쁨이 충만했다. 이 기쁨은 어디에서 임하는가? 회복의 은혜를 힘입은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이다. 여러분 속에 성령께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평안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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