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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불 (로마1:16-17) [2025년 5월 25일, 부활절 여섯째/ 웨슬리회심287주년기념주일]
2025-05-24 13:51:10
박신진 목사
조회수   12
설교일 2025-05-25
설교말씀 로마1:16-17
설교제목 마음 속의 불

마음 속의 불

로마1:16-17

2025525[부활절여섯째/ 웨슬리회심주일]

 

마음이 뜨거워지다

언젠가 어린 바이올리니스트 06년생 고소현을 얘기한 것을 기억하시는지? 얼마 전에 대니구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둘이서 쇼스타코비치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이란 음악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아직 소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음악영재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고소현과 청년 대니구 둘이서 연주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어린 바이올린 신동 고소현이 많이 컸더라. 그 아이가 대여섯 살 어릴 적에, 브람스의 바이올린 곡 하나를 듣더니 이렇게 한마디 딱 했다고 한다.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음악을 듣고 자기 마음 속이 뜨거워졌다는 거였다! 그러더니 그 마음 속의 불을 잘 살려서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어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뭔지 모르게 뭉클해졌었다!

오늘은 웨슬리가 지금부터 287년 전, 1738524일 저녁에 자기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고백한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감리교회는 이 <마음 속의 불>에서 시작된 교파이다. 교단을 만들려는 마음이 애초에 없었던 웨슬리였지만, 당시 기독교였던 영국 성공회는 웨슬리의 마음 속 을 감당할 수 없어서 거리로 내몰았고, 결국 어쩔 수 없이 감리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이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존 웨슬리는 그날 저녁 845분쯤에 아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갔다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교리를 설명하는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들었다. 그때 홀연 그의 마음 속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진 것이다. 그는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중생의 은혜를 체험하고 회심하였다.

감리교회는 무슨 조직이나 교회창립에서 시작된 교단이 아니다. 그냥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 안의 신앙운동으로 꾸준히 나아가다가, 워낙 강하고 대중들의 참여가 커지니까 성공회에서 쫓겨나 할 수 없이 자기들끼리 모이던 모임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교단으로 출발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국국교회 사람들이 놀리듯이 부른 규칙주의자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메도디스트라고 불렀고, 이것이 감리교회가 된 것이다.

이 감리교 신앙운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느냐 하면, 바로 웨슬리의 뜨거워진 가슴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 속의 불이 원조인 교파이다. 웨슬리는 원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뛰어난 인재들이 나오는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를 졸업한 수재였다. 웨슬리 가의 사람들이 다 총명하여 가족들이 옥스퍼드 동문이 많다. 우리로 말하면 가족들이 거의 서울대 출신인 셈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이성을 쓰는 사람이었다. 머리로 모든 걸 차갑게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던 그의 가슴에 복음의 뜨거운 열기가 점화된 것이다. 불을 받았다! 그래서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함께 할 때 영국교계는 변화되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오늘 말씀은 로마서의 주제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의인, 즉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웨슬리는 그동안 어떻게 믿었느냐 하면, 사람이 바르게 행동하는 실천이 있어야지 마음의 믿음만 가지고 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전통적인 카톨릭과 성공회의 생각이다. 그는 성결의 완성을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 다닐 때에도 홀리 클럽이란 동아리활동을 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경건한 단체였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그는 특별히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위험하고 형편도 어려운 신대륙 인디언 선교에 자원하여 나섰다. 말하자면 그는 성결을 온전히 이루면 구원을 이룬다, 즉 의로와진다고 생각했다.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구원받지 그냥 예수만 믿어서 어떻게 구원받겠느냐는 생각이다.

미국 조지아 선교를 가면서 인디언들이 무지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순박한 사람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하면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조지아 선교는 그의 헌신과 뛰어난 설교와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거기 담당 행정관의 조카와 있었던 애정문제 때문에 큰 시험을 당해 결국 사법처리를 앞두고 도망쳐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는 경건한 믿음의 용사요 성실한 하나님의 종이었으나, 자기의 재능과 힘만으로는 구원에 이르는 능력이 되지 못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렇게 마음이 절망에 빠져 어찌할 바 모르고 있을 때 마침 그에게 큰 도전을 준 신앙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모라비안들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불 받은 사람들이었다. 인디언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 속에서, 풍랑이 쳐서 죽을 것 같았을 때 모라비안들은 함께 찬송을 하며 의연히 믿음으로 이겨내었다. 이런 믿음을 현장에서 본 웨슬리는 큰 도전을 받았다. 웨슬리보다 몇 살 아래인 피터 뵐러라는 독일 출신 지도자가 그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한 마음의 증거가 있는지, 계속 물으며 도전해왔다. 그냥 기독교도로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생활을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속에 구원받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피터 뵐러는 살아있는 신앙의 진정한 열매는 성결과 행복’(holiness and happiness)이라고 얘기하면서, 마음의 확신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웨슬리는 조지아에서의 실패에 겹쳐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심각한 의문에 빠져 고민하며 열심히 기도했다.

 

올더스게이트 회심의 의미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에서 회심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회심을 통해 그의 가슴에 복음의 불이 점화되었다. 모라비안처럼 자기도 뜨거워진 것이다. 그것은 그냥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성결의 노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하나님께 항복함으로 얻어지는 은혜였다. 깊은 지적인 깨달음과 동의에 따라 마음의 종교,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을 인정할 때 오는 강력한 감동 같은 것이었다. 루터의 신앙의인 교리(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가 자기 가슴 속에 살아있는 메아리가 되어 강력하게 울려퍼진 것이다. 웨슬리 회심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는데 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들어두시기를 바란다.

첫째, 회심 전에 웨슬리는 종의 믿음을 가졌으나, 회심 후에 그는 아들의 믿음을 갖게 되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의무로 행하지만,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기쁘게 일한다. 그리고 종은 주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나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다.

둘째, 웨슬리는 율법주의 신앙으로 자기 노력을 무던히 했는데도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없이 실패한 믿음이 되었으나, 이제 회심함으로 복음주의 신앙으로 돌아왔다. 이전에는 행함으로 의로와지려는 자기 의, 행위의 의를 의지하는 율법적 믿음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것이다.

과거 영국 국교회가 가졌던 구원관(아르미니우스주의)은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회심한 웨슬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속죄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주의 구원관을 붙들게 된 것이다. 자기 노력 위주의 믿음에서 주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오직 예수로만의 믿음이다!

셋째,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확고한 신앙관을 가지게 된다. 칭의와 성화의 순서가 바뀐 거다. 올더스게이트 회심 이전에는 성결을 온전히 이루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아 구원을 이룬다고 생각했었다. 웨슬리는 인간의 도덕적인 노력과 선을 행함으로 성화를 이루기 위해 고뇌하였다. 그 일환으로 신대륙 선교사로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무조건 하나님 앞에 자기 죄악을 내려놓고 속죄의 은총을 의지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조금 늦었으나 웨슬리는 이제야 하나님 앞에 항복의 손을 들었다.

넷째, 피터 뵐러와 같은 모라비안 신자들의 도전을 받아들여 마음이 뜨거워짐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즉 죄 사함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했다. <마음 속의 불>이 웨슬리 회심의 중요한 체험이다. 이것이 감리교 부흥의 불씨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이 성령의 증거요, 마음에 심기어진 성령의 강력한 인상(느낌, 감동)이다.

다섯째, 그렇다고 해서 모라비안처럼 마음의 뜨거움, 성령의 내적 증거만 붙들고 구원을 다 이루었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요즈음 구원파적인 믿음으로서 이단적인 것이다. 여전히 웨슬리에게 있어서 신앙의 목표는 성화와 완전성화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의의 은혜를 받았다고 모든 것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성령의 도우시는 능력 안에서 완전 성화를 향해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개신교 신앙과 성화의 삶으로 주의 뜻을 이루는영국국교회인 성공회의 신앙이 종합된 것이다.

 

회심의 결과1- 마음의 기쁨과 성령의 은사

회심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웨슬리 전기를 통하여 아는 대로, 회심의 결과 웨슬리 마음 속에 있었던 어두운 그림자가 다 사라지고 믿음으로 얻어지는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게 되었다. 존 웨슬리는 곧 자신이 마음에 경험한 것을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간증하였다. 모든 절망이 사라지고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밤 10시쯤 되어서 그곳 신도회 회원들과 함께 동생 찰스에게로 갔다. 그들은 찰스와 함께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다가 기도하고 헤어져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회심하면 우울과 침체가 사라진다. 회심하면 기쁨이 샘솟는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의를 깨닫고 용서를 경험할 때 자신감과 확신이 있다. 회심의 결과 천국이 우리 생활에 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회심한 사람들은 의의 열매를 맺는다. 회심한 사람은 주위에 영향력 있는 삶을 누린다. 회심한 사람들은 입술에 찬송이 있다. 신앙이 침체되지 않고 밖으로 표현된다. 그 믿음의 내적 증거가 외적 결과로 자꾸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회심의 결과로 나타나는 이런 심적 상태가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 무엇인가? 회심해도 며칠만 지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도로 그 마음인 걸까? 그렇지는 않다. 웨슬리는 참된 신앙에는 죄에 대한 승리와 마음의 평화가 꼭 따른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러나 줄곧 끝없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이 자주 유혹을 받으며 연약하기 때문이다. 유혹을 받는 것은 회심 전과 다르지 않지만, 이제는 전과 달리 항상 전적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회심한 이후로 신자들은 유혹을 받고 영적 침체에 빠질 때마다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영적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힘을 다해 기도하면 틀림없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회심하여 구원의 확신이라는 내적 증거를 가지게 된 웨슬리는 전과 달리 찬송과 기도에 더욱 힘쓰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과 은혜가 강같이 흐르게 되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회심한 웨슬리는 그때부터 내적 증거를 외적 고백으로 발전시키는 전도자가 된다. 웨슬리가 회심한 것이 524일인데, 그로부터 반년동안 강력한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생활한다. 특히 페터레인이라는 곳에서 5-60명의 신도들과 함께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는 집회를 여러 번 가진다. 해가 바뀌어 173911일 저녁에 있었던 집회를 웨슬리는 이렇게 기록한다.

기도를 계속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나 강하게 역사하여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서 큰 소리를 질렀으며,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우리는 조금 정신을 차렸을 때에 주님의 권세 있는 임재에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모두 한 목소리로 우리가 당신을 찬양합니다. , 하나님! 우리가 당신을 우리 주님으로 인정합니다.’라고 외쳤다.”(김진두, 존 웨슬리의 생애, p.165)

 

회심의 결과2- 땅 끝까지 전도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의 펠로우(교수자격자)로서 교수자격이 있는 지도자였고 영국 사회의 상위계급이었다. 그러나 회심한 후에 그는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버림받은 대중들을 위한 복음전파자가 되기로 작정한다. 그는 거리의 전도자로 나서서 복음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달려가 복음을 전했다.

존 웨슬리보다 앞서서 그의 동역자 휫필드는 안전하고 존경받는 교회의 강단을 떠나 거리에서 모여있는 대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웨슬리에게도 복음을 듣기 위해 갈급한 사람들에게 설교해야 한다고 계속 권유한다. 웨슬리는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며 기도하였다. 왜냐하면 거리에서 무식한 민중들에게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천박하게 다루는 일이 될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휫필드는 자기가 설교하는 곳에 웨슬리를 데려가서 보여주며 권유한 결과, 웨슬리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야외 설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요 명령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회심한 다음해 42일 월요일 오후 4시 쯤 웨슬리가 브리스톨 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공터에서 약 3천 명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웨슬리가 거리의 설교가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사람들이 웨슬리의 설교를 듣게 된다. 웨슬리가 야외 설교를 하지 않았다면 감리교 부흥운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 집회에서 복음으로 믿음을 새롭게 하는 사람들이 구름떼와 같이 모여들고 질병이 고침을 받고 미친 사람이 나음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많이 모일 때는 광산의 큰 웅덩이에서 32,000명까지 모였다고 한다.

웨슬리는 회심한 다음 해 1739년부터 생애를 마치는 1791년까지 약 52년간 말을 타고 다니는 노방전도자로 매년 평균 800번을 설교하였고, 40,000번 이상을 설교하였다. 매년 약 5,000마일을 순회 설교로 여행하며, 2년에 한 번씩 영국 본토와 아일랜드 섬 전체를 돌았다. 그는 성직자로서 대우는 못받았지만 길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불타는 가슴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노방전도자로 살았다. 그는 거리의 전도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책들이 엄청나게 팔려 웨슬리를 큰 부자가 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웨슬리의 전통을 따라 믿음으로 구원 얻는 신앙도리를 붙드는 복음적인 사람들이요,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를 따라가는 성령 충만한 교회일 뿐 아니라, 열정을 가지고 땅 끝까지 복음전하는 전도자들이다.

 

돌이켜보면 10년쯤 전에 웨슬리회심주일을 앞두고 몇 주 전부터 존 웨슬리의 생애에 관한 책을 읽었었다. 그분의 믿음과 삶이 저의 마음에 오롯이 새겨졌던 행복한 기억이 있다. 우리는 교파나 교리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도 마음 속의 불을 회복해야 한다! 어린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듯이, 여러분도 복음으로 인하여 마음이 뜨거워지기를축복한다. 이 뜨거움을 가지고 마음이 기쁘고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사람’, ‘땅 끝까지 전도하는 사람되기로 결단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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