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5-08-10 |
---|---|
설교말씀 | 갈5:16-24 |
설교제목 | 성령을 따라 행하라! |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5:16-24
2025년 8월 10일 [성령강림후 야홉째/ 광복기념주일]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외국을 여행하고 또 가고 싶어 한다. 외국 여행을 할 때 우리는 낯선 곳을 안내해주는 여행사 가이드를 만난다. 언젠가 미국에 갔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가이드는 얼마나 목소리가 좋고 점잖은지 처음에는 대학 교수가 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보니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고 노래를 잘 불러 여행이 정말 즐거웠다. 알고보니 음악을 공부한 사람으로 역사를 좋아하여 가이드가 된 사람이었다. 어쩌다 가이드를 잘 못해주는 데다 욕심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면 여행을 다 망치게 되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좋은 안내자 만나기를 바란다.
여행길에도 그렇거든 하물며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는 분이랴!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우리를 인도할 분을 잘 만나야 한다. 어떤 사람은 사상이나 지식의 인도를 받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주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의 인생길을 복된 구원과 은총의 길로 인도해주신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행복과 기쁨이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평안이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생의 열매가 풍성히 맺힌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까? 갈라디아 5장 16-24절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이 어떤 것인가?
1. 성령의 소욕을 가지라.
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성령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라.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순결하게 주님을 섬기며 어떻게 그렇게 위대하게 주의 일을 감당하고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자기와 주위 사람들까지 지켜왔을까, 감탄할 때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과 동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성령님과 함께 일했는가? 성령을 사모하였다!
우리나라에 진지한 성령 운동의 물꼬를 튼 신학자요 영성운동가인 아쳐 토레이 목사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반복하여 기도하였다고 한다. “성령님, 제가 성령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는 말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 없이 말할 때 저는 너무나 많은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을 때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저는 너무나 자주 그릇된 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이동원, 성령에 속한 사람, p.187)
성령의 소욕을 가지라. 성령에 대한 사모함을 잃지 말라. 성령만이 우리를 정결케 하며 성령만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만들고, 성령만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보면 그리스도인 ‘기독도’가 ‘해석자’의 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기독도’는 그 집의 첫 번째 큰 방에 들어가는데, 그 방은 온통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잠시 후, 하녀가 나오더니 빗자루로 그 방을 쓸기 시작했다. 그런데 쓸면 쓸수록 먼지가 더 나서 눈을 못 뜨고 기침을 하고 난리다. 결국 하녀는 들어가고 다른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은 방안에 먼저 물을 뿌리고 나서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먼지 나지 않게 깨끗이 방을 쓸었다.
여기서 먼지로 덮여 있는 방은 사람의 마음이고, 먼지는 우리 죄다. 그것을 쓸고 있던 하녀는 율법이나 인간의 육신적 노력이다. 우리 힘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죄가 더 일어날 뿐이다. 그러니까 율법은 죄를 알려줄 뿐이지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나중에 나와서 물을 뿌리고 방을 깨끗이 청소한 사람은 바로 성령님이요 복음의 역사를 상징한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된다. 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의 소욕을 가지라. 날마다 성령을 사모하는 생활,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비결이다.
믿는 사람 가운데 이 점을 소홀히 여겨 성령의 소욕을 열망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힘대로, 판단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면 성령이 임재하지 않은 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게 된다. 똑 부러지게 ‘성령님, 나와 함께 해주세요! 내 안에 머물러 주세요! 나의 말과 표정과 손짓, 몸가짐 하나에 함께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성령님, 오늘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와 함께 해주세요!’ 마치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무엇을 부탁하는 것처럼 성령의 소욕을 가질 때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고 성령의 뜻을 이룰 수 있다.
2. 성령을 거스르는 것들을 버리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성령을 거스르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 성령을 거스르는 것들을 바울은 ‘육체의 일들’이라고 했다. 이런 것들을 피하면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원래 인도를 받는 것은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없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니까. 성령을 거스르는 것들을 그냥 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니 실패한다. 19-21절까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일이 나열되어 있다. 죤 스토트, 네 가지 종류로 나눈다.
첫째, 성적인 죄로서 음행(이성과의 부적절한 관계), 더러운 것(비정상적인 성적 행동), 호색(성에 대한 공개적인 범죄) 들이다. 성경은 성이나 사랑의 육체적 표현을 다 부인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육체적 성도 선물로 주셨다. 따라서 아름답고 건전한 성과 사랑의 행동은 아름다운 것이고 축복의 선물이다. 여기서 현저한 육체의 일들로 지적된 것은 적절하지 않은 성의 남용이다. 우리 시대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성이 남용되고 비정상적인 것까지 허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성적인 죄에 빠지면 성령 충만할 수 없다. 한마디로 너무 육체적 쾌락을 밝히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성을 남용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동영상을 본다든가, 유흥을 빈번하게 즐긴다든가 하는 것은 다 성령을 거스르고 육의 욕심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이니까 호색한다는 말에 다 해당될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 너무 빈번함으로 대체적으로 믿는 이들은 절제하는 것이 좋다!
둘째, 우상숭배와 술수와 같은 사교의 죄다. 잘못된 종교, 사이비 이단에 빠지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 술수는 악령과 접촉하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한 일들을 말한다. 이상한 게 보인다,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누가 뭘 안다더라, 신기하게 쪼개더라, 이런 말들 때문에 미혹된 길로 갔다가 악령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요즈음도 적지 않다. 이런 죄에 빠진다면 당연히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교회’ 이단은 안상홍이 창설한 이단인데 그가 죽자 동거인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이라며 계속 섬기고 있는 이단이다. ‘신천지 이단’은 요즈음 자기 이단단체를 드러내어 정통교회로 들어오고 싶어한다. 비판 받는 것을 다 감추고 가리나, 요한계시록에 대한 무리한 해석을 비롯하여 총회장 이만희를 보혜사 성령에 버금 가는 존재로 인정하는 이단이다. 정통교회들을 공격하고 해쳤으므로 이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원파’ 이단은 ‘기쁜소식 선교회’를 비롯하여 침례교 간판을 달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와 무리를 일으켰다.
셋째로, 사회적인 죄로서,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 이단(공동체를 분열시키기 위한 다른 가르침이나 조직), 투기가 있다. 자기가 인정받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말이나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죄악들에 빠지면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넷째로, 방탕하지 말아야 한다. 술 취함과 방탕이 여기에 속한다. 방탕은 술 취함의 결과로 일어나는 일체의 죄악된 현상들이다. 음주 자체가 죄라는 성경의 말씀은 없으나 이것이 취하여 방탕에 이르게 될 때, 또 상습적인 생활의 방탕으로 이어질 때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육체의 현저한 죄악이 된다.
이런 죄악이 나타날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신다.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경고하고 싸인을 보내신다. 그때 양심의 찔림이나 어떤 영감을 무시하고 성령을 소멸시켜서는 안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하였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성령님이 더 원하시는 바다. 따라서 성령을 거스르는 육체의 현저한 악을 저지름으로써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도록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3. 성령과 함께 걸어가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의식하고 성령님을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6절) 영어성경에 보면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말이 ‘성령 안에서 걸어가라.’(Walk in the Spirit.)로 되어있다. 그 동사의 시제가 현재로 되어 있어서, 날마다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행동임을 보여준다. 늘 현재형으로 성령 안에서 걸어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뜨거운 성령, 강력한 성령을 주로 말하는데, 과거에 엄청난 성령 체험을 한, 1회적 성령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늘 여기에서 성령과 함께 사는 것, 즉 현재적 성령동행이 중요하다. 과거의 성령 체험이 오늘 승리의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고 그분의 인도를 구하며 충만함을 입도록 해야 한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그분을 따라 걸어가라. 이미 구원받았으나 오늘 처음 구원받은 자처럼 새롭게 영적 긴장을 가지고 살 때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한 순간이라도 성령의 임재가 떠나가면 그 순간 우리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욕망과 옛사람의 악습을 따르는 ‘육신적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리거나, 잘해봐야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혼자 애쓰며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율법적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린다. 목사가 되어 40년이 넘었지만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매 주일 보면서 긴장하고 깨어있게 된다. 순간순간 성령님을 의지하고 구체적인 생활에서 성령의 뜻을 따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라.
성령을 부르라! “성령님, 함께 해주세요! 도와주세요! 지금 내게 와주세요! 내 안에 있는 죄악과 육신의 소욕을 물리쳐 주세요!” 아처 토레이 목사님은 존경받는 영성가요 신학자이지만, 어린 아이와 같이 순진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 “성령님, 성령님!! 내게 와주세요, 나를 인도해 주세요!”
마음으로 성령을 의지하라! 내 마음을 주께 드리고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나아간다. ‘주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성령으로 채워주소서!’ 말에나 일에나 행동에 있어 성령을 앞세우고 성령을 따라간다. 주 계신 곳에 나 있고, 주 가시는 곳으로 나 따라간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가 스스로 성결하고 고상하며 지혜롭고 위대한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다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시카고 일원에는 무디 기념 교회와 ‘무디 비블리컬 인스티튜트’라는 신학교가 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마침 고등학교 졸업 때라 주변 고등학교가 기념예배당에서 졸업식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으니 보고 갈수 있도록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하여 틍제선 안으로 들어가 성전과 부속실들을 둘러보았다. 위대한 믿음의 흔적들이 나타나 있었다.
무디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으라는 전도 설교를 많이 했지만 신자들에게는 성령에 대해 많이 강조했다고 한다. 어떤 비판적인 사람이 “자기 혼자 성령 성령 하고 다니다니, 무디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느냐?” 라고 비꼬았다. 그러자 무디를 존경하던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무디 선생님이 성령을 독점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령님이 무디 선생님을 독점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도,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다. 위대한 믿음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성령을 따라 산 사람이다.
우리교회에도 성령님만 높이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보라! 기도가 힘이 있다. 영혼 구원의 소원이 있다. 지치지 않고 주를 따라간다!! 삶이 향기롭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 성령 안에서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바란다. 성령을 따라 행하다가도 쓰러질 때가 있고 넘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에 깨닫고 다시 일어나,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마디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다!
늘 무력하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스스로 넘어질 때마다, 우리도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자. 성령의 은혜를 끼얹어야 죄의 먼지를 가라앉힐 수 있다! 성령 없이 노력하는 것 가지고는 온전히 이룰 수 없다. 먼지만 날릴 뿐이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을 거스르는 것을 버리며, 순간순간 성령과 함께 행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
댓글